0) 내 관점부터 깔고 간다 (왜 나는 ‘실패’라는 말을 싫어하는가)
포스트모템 발제문서 첫 줄은 이렇게 시작했다.
우리는 실패했습니다
근데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.
이유를 이번에 좀 또렷하게 알아냈다.
“실패”는 내 머릿속에서 ‘결론’이고 ‘끝’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.
즉, “판결 난 상태”, “정리된 상태”, “여기서 더 갈 데가 없는 상태”처럼 들린다.
근데 나는 지금이 그런 상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.
나는 아직 성공으로 가는 과정 한가운데에 있고, 이번 프로젝트는 그 과정에서 확실히 앞으로 간 기록이다.
그래서 “실패”라고 딱 잘라 명명하는 게 싫다. “끝났다”는 느낌을 주니까.
그리고 여기엔 내 성향도 개입돼 있다.
나는 원래 만족을 잘 하는 편인 것 같다.
군대에서도 다들 힘들다는데 나는 “생각보다 안 힘든데?”라고 느낀 적이 있었고,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“힘들다”를 정의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.
- 내 기준에서 힘듦 = 더 이상 어떻게 해도 못 하겠는 상태
-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‘힘듦’으로 잘 안 친다
헬스도 똑같다. 아령을 한 번 더 들 수 있는데 “그만두는 것”은, 내 머릿속에서 ‘힘든 것’으로 잘 카운트가 안 된다.
그리고 옆에서 누가 힘들다고 말해주면, 나는 오히려 “나는 안 힘든 편이네”라고 스스로를 그쪽으로 밀어버리는 면도 있는 것 같다. (억지로라도)
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도 “망했다/실패했다”로 닫고 싶지 않다.
나는 이걸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과정으로 적고 싶다.
다만 팀원들이 실패라고 부르고 싶다면… 뭐, 그러라고 해라. 흥.
1) 결과(팩트) — 숫자는 숫자대로 남기기 (기준일: 2026/02/12)
1-1. 상점 페이지 노출 / 클릭률
- CTR: 12.7%
- 결론(팀 문서): 스팀내 평균보다 높은 편 같았다.
1-2. 위시리스트 / 플레이한 사람 수
- 위시리스트: 1474명
- 플레이한 사람 수: 1281명
1-3. 플레이 타임
- 중간값: 25분
- 평균값: 1시간 4분
1-4. 리뷰
리뷰는 “좋다/나쁘다”보다도, 출시 이후 팀이 어떤 행동 패턴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지에 직접 영향을 줬다.

2) 이번 게임을 한마디로 (팀이 적은 그대로 + 내 문장 보강)
- 나: “만들었는데 재밌는지도 확신이 없었다. 근데 스트리머가 하는 걸 보니까 ‘아 재미있구나’가 느껴졌고, 기분이 최고였다.”
- CJ: “완성은 했지만 볼륨이 부족하다. 위시리스트 수에 비해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만족은 못하겠다.”
- LJ: “불안불안한 팀이 만든 불안불안한 게임. 우울하다. PoC를 너무 빨리 정한 게 아닌가부터 결과도 만족스럽지 않다.”
여기서 내 문장은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설명을 조금 붙인다.
나는 사실 개발 내내 ‘재밌다’고 거의 마인드컨트롤 하듯이 만들었다.
처음 PoC를 떠올릴 때는 “이거 재미 있을 것 같은데?”가 분명히 있었고, 실제로 재미가 있는 구간도 있었다.
근데 같은 걸 계속 계속 만지면 무뎌진다. 만들던 사람이 재미를 못 느끼는 상태가 오고, 나는 그 상태를 “재미없다”로 착각했던 것 같다.
그래서 스트리머가 플레이하는 걸 봤을 때, 내가 무뎌져서 못 느끼던 재미가 밖에서 다시 보이니까
“아 맞다, 이거 재미 있었지”가 돌아왔다. 그 말이다.
CJ, LJ의 문장은 (추가 설명이 없으니) 적힌 그대로 둔다.
3) 문서 첫 줄이 왜 ‘실패’였나 (사실 그건 “발제문서”였다)
“우리는 실패했습니다”는 우리 프로젝트에 대한 최종 판결이라기보다,
포스트모템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발제문서/템플릿의 첫 줄 같은 느낌이었다.
그래서 팀 내에서도 약간 이런 흐름이 생겼다.
- “발제문서에 적힌 그대로 가자”는 쪽 vs
- “왜 꼭 써진 그대로만 해야 하지?”라는 내 쪽
게다가 CJ/LJ는 실제로 “성공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.
나는 반대로, 실패로 딱지 붙여서 끝내는 것이 싫었다.
4) 사실 회고 —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서 나온 것들
4-1. 문제 생기면 회의 소집
- 나는 회의를 하기 싫어했다.
- LJ는 회의를 계속 주장했다.
- CJ도 회의를 계속 주장했다.
내가 회의를 싫어했던 이유를 회고하면서 분해해보면 이렇다.
나는 늘 “사람 생각 바꾸는 게 제일 어렵다”를 생각해왔는데,
이상하게도 동시에 사람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.
그래서 회의가 열리면 “지금 여기서 결론 내고, 지금 여기서 설득하고, 지금 여기서 바꾸자”를 하려 했다.
근데 이번에 깨달았다.
사람 생각은 1초 만에 바뀌는 게 아니라 며칠에 걸쳐서 바뀌는 것 같다.
(이걸 블로그 쓰다가 이제 알았네…)
그래서 회의는 자주 열릴수록, 오히려 “설득”이 아니라 소모가 됐던것 같다.
4-2. 회의장에서의 패턴
- CJ는 (불리해지거나 불만이 생기면) 말이 없어짐
- 나는 지치면 말이 없어짐
- LJ는 계속 말하고, 어떻게든 이기려는 느낌이 생김
내가 말이 없어지는 이유는, 지금 보면 회피형 방어기제에 가까운 것 같다.
“바뀌지 않을 싸움/괜한 싸움”을 피하려고 몸이 먼저 멈춰버리는.
4-3. 결론이 나올 때(혹은 안 나올 때)
- 2:1 구도에서 각자 반응이 갈렸고
- “쓸데없는 회의다”가 감지되면 셋 다 바로 멈추는 방향으로 갔다(Parking lot)
개인 성향도 있지만, 더 본질적으로는 의사결정 규칙이 없어서 폭발이 더 잦았던 것 같다.
“이 회의는 무엇을 결정하는지 / 언제까지 / 결론은 어떻게 기록하는지” 같은 것들." (분명 초반 스크럼에는 있었던것같은데.. ㅋㅋ)
4-4. 의사소통 방식 변화(예전 → 최근) + 내가 바뀌게 된 ‘사건’
나는 원래 그냥 내 방식대로 했다.
아이디어가 있으면 말 없이 적용해버리고, 나중에 들키면 그때 대응하는 식.
근데 내가 중간 공유를 진짜로 하게 된 데에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.
어느 날, 내가 LJ의 작업물을 말 없이 ‘개선’한다고 건드렸는데, LJ 입장에서는 그게 “개선”이 아니라 자기 작업을 없애버린 것이다.
그래서 LJ가 나한테 엄청 화가 나서 왔었다.
그때 깨달은 게 있다.
- 나는 “좋아질 거라고 확신하면 일단 적용해버리자” 쪽인데
- 남에게는 그게 맥락 삭제 / 노력 삭제 / 주도권 박탈로 느껴질 수 있다
그래서 이제는 그 사건 이후로
- 먼저 공유하고(적용 전/적용 중)
- 상대가 받아들이는 시간을 주고
- 내가 의도한 이유를 말로 명확히 전달하고
- 상대가 어떤 의도/생각으로 요구하는지도 이해하면
이게 결국 설득 비용을 줄이고, 낭비를 줄이고, 감정 싸움을 줄이는 쪽에 더 효과적이다.
4-5. 게임 출시 이후
문서에 적힌 “출시 이후”는 이랬다.
- 나: 초기에는 열심히 개발을 함. 그 뒤에 다들 노니까 따라 놀음. 이제 더 이상 일을 하기 싫어함. 지쳐 보임.
- LJ: 롤만 잡고 있음. 개인 PoC 혼자 만듦. 시키는 거만 함.
- CJ: 발등에 불 떨어져서 잠도 못 자고 수치 확인만 함. 리뷰 숫자 하나 올라갈 때마다 알람 엄청 옴. 비추천 나오는 날엔 비상. 비추천이 나오면 팀원에게 목줄 걸고 또 일 시킴. 본인은 리뷰 관리 + 하루종일 공지(10개 국어) 작성.
여기엔 내 코멘트를 아주 조금만 붙이면:
- “초기에는 열심히 개발”이라고만 적히면, 마치 초반만 하고 말았던 사람처럼 읽힐 수 있는데
내 체감은 “처음부터 출시까지는 계속 달렸고”, 출시 후에 분위기상 같이 쉰 구간이 커 보이면서 저 문장이 나온 느낌이다.
5) 원인 분석 — “아트 때문” 하나로 닫히면 오히려 방어기제일 수 있다
문서에 적힌 원인은 크게 3개였다.
- 위시리스트가 충분히 많지 않았다
- 전략성이 떨어졌다(전략을 안 해도 되는 구조)
- PoC를 너무 빨리 정했다(피로 기반 선택)
여기서 “아트가 중요하다”는 말은 맞다.
근데 원인을 “아트 부족”으로만 수렴시키면, 그건 우리 내부의 방어기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.
아트는 분명 중요하지만, 동시에 우리가 통제 가능한 내부 문제(시스템 설계/조작 UX/경제 구조/결정 구조)를 놓치면 안 된다.
그래서 나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.
- 아트: 첫 클릭과 첫인상에 영향(맞음)
- 내부: 전략 강제력(경제/손실/리스크), 조작 UX, 의사결정 구조, PoC 선택 과정
- 결론: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겹친다 — 하나만 붙잡으면 편해지지만, 해결은 약해진다
6) 개선 도출 — 다음 프로젝트에서 바꿀 것
- 시장 흐름을 읽고 만들기(감 말고 기준 만들기)
- 아트 책임자 만들기(영입/공부/외주 포함)
- 입문은 쉽게, 전략은 ‘필요’하게
- Q/W/E 한 곳 박아도 스테이지가 클리어되는 구조는 수정
- 분할 컨트롤은 깊이는 유지하되 진입 난이도 낮추기
- AI 경제/자원/손실 구조를 다시 설계해 “전략”을 강제
- 회의 방식 변경
- 회의 주제 정하고 → 하루 생각하고 → 다음날 회의
- “지금 바꾸자”가 아니라 “시간을 두고 바꾸는 구조”로
- 3명이면 기간 늘리거나, 가능하면 4명 이상
7) 마무리
CJ/LJ는 실패라고 부르고 싶어했고, 발제문서도 그렇게 시작했다.
나는 “실패”가 싫다. 끝 같아서. 나는 아직 과정인데.
그래서 나는 이렇게 남기고 싶다.
우리는 실패한 게 아니라, 성공으로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경험치를 먹었다.
그리고 다음에는 그 경험치를 규칙으로 바꿔서 덜 흔들릴 것이다.
(그래도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은… 뭐, 그러라 해라. 흥)



